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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미성년 (Another Child, 2018)

미성년 (Another Child, 2018)
감상 : 이 집 백합 잘하네. 근데 엔딩이 약간 흐지부지 열린 결말 같아서 연작(이지만 그대로 끝날 수도 있는 단편) 동인지 첫권 같았다. 확실히 여성을 보편적 사람으로 본 것 같은게 보통 미디어가 사랑하는 '여고생은 이래야지', '엄마는 이래야지'의 느낌이 별로 없다. 근데 또 감독이 실제 여고생의 생태를 잘 모르다보니 급식시간에 항상 단둘이 먹던 친한 친구에게 대뜸 너 먼저 먹어라 / 구랭ㅇㅇ 같은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 장면 비현실적인 거 빼고는 다 좋았음. 여고생에게 친구와 밥이란 그렇게 산뜻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시기 아이들에게 친구와 밥은 어마어마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ㅋㅋ) 확실히 그건 성인 남자가 모르는 부분일 수도 있지. 아마 여성 감독이 찍었다면 혼자 남은 친구 근처에 다른 친구를 더 나오게 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게 하거나, 야 너 먼저 먹어 라고 말을 건넸을 때 야 왜, 하고 끈질기게 굴거나 미리 말하지 나 누구랑 먹으라고 하며 투덜거리는 식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그 나이 때 친구와 밥이 걸린 일에는 보통 쿨해지기 어려운 법이니까. 

근데 또 다른 면에서는 청소년 여자애 같은 부분(성질대로 하지만 약해진 주변인에게는 은근슬쩍 물러지는 부분)도 잘 살아있고 염정아 캐릭터가 지닌 실질적 가장으로서 성인 여성의 모습 같은 것이 제법 리얼하게 담겨있다. 엉망이 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상황에 스트레스도 받고 힘겨운 감정은 전부 느끼지만, 그 감정에 짓눌리기보단 일단 당장 해야할 일을 먼저 본능적으로 찾아서 하는 모습 같은 것이 그랬다. 싱황을 정리하기 위해 자기 감정을 죽이고 일단 급한 당장의 일처리부터 해나가는 부분이나 그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부분 같은 것이 꽤 리얼했고, 김소진이 맡은 미희 캐릭터가 겪어온 성장과정과 그 때문에 그 캐릭터가 조금은 어리게 구는 부분도 리얼했다. 여성 캐릭터들이 이토록 리얼하게 살아숨쉴 수 있던 건 아마 원작과 각본을 쓴 작가의 역량과, 감독의 노력과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었겠지. (물론 작가가 가장 큰 공헌을 했겠지만 감독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하고, 관찰도 많이 한 것 같았다.) 

아 그리고 김윤석 캐릭터 너무 구리고 찌질하고 최악임ㅋㅋㅋㅋㅋㅋ 왜 남배우들이 고사했는지 너무 알겠는ㅋㅋㅋㅋㅋㅋ 근데 괜히 연기 어중띄게 하는 배우한테 맡기느니 본인이 맡길 잘한 것 같다. 배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 정말 전체적으로 연기력 파티고, 특히 염정아와 김소진이 중심을 잡아주는데, 두 배우의 얼굴 위로 미묘하게 드러나는 안면근육의 움직임과 거기에 담긴 오만 감정이 정말 최고임... 이에 맞는 최상급 표현을 찾아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임. 주리역의 김혜준 배우는 구면이었는데 지금까지 봤던 작품 통틀어서 여기에서 제일 좋았고 윤아역의 박세진 배우는 초면이었는데 엄청 좋았다. 그리고 김소진 배우랑 박세진 배우 얼굴 엄청 닮아서 그냥 봐도 모녀 같음ㅋㅋㅋ 그리고 염혜란 배우랑 정이랑 배우도 그냥 별다른 부가설명 없이도 너무 모녀임ㅋㅋㅋ 그냥 얼굴만 봐도 모녀임ㅋㅋㅋㅋ 게다가 오지랖퍼 엄마랑 그런 엄마 단속하는 딸도 너무 현실의 그것임ㅋㅋㅋㅋㅋㅋ 정말 조연으로 반가운 얼굴이 많이 나오는데 남캐들은 하나같이 찌질한 것도 웃겼음ㅋㅋㅋㅋ 정신 못 차리는 이희준 캐릭터나 어딘지 한심한 김희원 캐릭터도 좋았음ㅋㅋㅋㅋ 이정은 배우랑 이상희 배우는 좋긴 했는데 비중이 그리 많진 않았고. 뭔가 전체적으로 영화의 이미지는 맨 처음에도 썼지만 한국 동인 존잘님 동인지 같았다. 막 스펙타클하고 쫀쫀하진 않은데 선선하게 바람 부는 오후에 휘몰아치는 두 사람의 감정선, 이런 느낌ㅋㅋㅋ 


그리고 보통 여고생이 나오는 미디어에서 딸기우유나 초코우유는 순수의 상징이지만 이 영화에서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는 미친 사랑의 증표임. 그 휘몰아치는 광기 어린 사랑... 마치 들개 같군. 동인 백합러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임. 그리고 딸이 엄마에게 갖는 애증과 연민과 사랑... 그런 게 굉장히 잘 살아있는데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난 작품은 비밀은 없다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다. 이걸 김윤석이 담아냈다니 놀라움. 차기작도 보고싶으니까 아무쪼록 손익분기점 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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